Clockwork Orange :: 2008 전국 자전거 여행 - 17일째 춘천~의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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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기2009/01/14 10:30


2008년 8월 13일 수요일

 어제는 거의 반나절동안 비를 헤치면서 달린건 힘이 안 든 것은 아니었지만 땡볕 아래에서 달리는 것에 비하면 안락하게 산책나가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컨디션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으나 찜질방에서 창밖을 보니 하늘은 이것을 가만두지 않을 듯 찌뿌퉁하다. 어째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지만 일단 도심에서는 바로 비를 피할 곳이 많아서 달려보기로 한다. 찜질방이 있던 골목에서 나와서 신호를 받고 단 한블럭을 넘자마자 비가 엄청나게 쏟아진다.

다시 한번 월드 스타의 강림... 지독하게도 많이 내렸다.


 바로 앞쪽으로 *마트 건물이 보여서 일단 *마트의 처마 밑으로 갔다. 당장 일기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어서 집에 전화를 해보니까 앞으로도 계속 올 것 같다고 한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빗줄기가 약해지길 1시간정도 기다렸다. 그런데 도무지 빗줄기가 약해지길 않고 하늘을 봐도 계속 올 것 같아서 어제처럼 비를 헤치면서 달리기로 한다. 젖으면 안 되는 모든 짐을 패니어에 단단히 다 넣고 방수팩을 씌운 뒤에 빗속으로 뛰어든다. 필살의 전쟁터에 나가는 용사 같은 느낌보단 그저 길이 있어니 가는 방랑하는 맘으로 가니 쏟아 오르는 짜증을 살며시 밀어내고 덤덤하게 빗속을 뚫고 계속 간다.

 비는 어제보다 더 굵직하게 내려서 처음에는 비를 맞으면서 달리는 게 버겁게 느껴지다가 옷이 완전히 비에 젖고 그 상태로 어느정도 달리니 역시 어제처럼 다시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른다. 나는 제법 담담하게 유유자적(?) 자전거를 탔지만 내 옆을 스쳐 지나간 자동차 운전자들은 아마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1시간 30분정도를 달리니 굵던 빗줄기도 점점 멈춰가고 저 멀리론 해가 나는 것이 보이니 조금만 더 가면 비가 완전히 그칠 것 같다. 원래 계획상으로는 첫번째 경유지로 고슴도치섬에 들렸다가 가는 것이었지만 비가 오는 통에 막무가내로 서울로 향하는 46번 도로를 계속 타고가는 통에 그냥 지나치게 되었고 비가 거의 그쳤을 무렵 ***마트와 국밥집이 있는 외진 상가건물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빗속을 헤치면서 달리느라 아침을 먹지 못해서 배가 고픈 것은 당연했다. 빗속을 달리면서 와서 그런지, 아니면 여행을 하면서 국밥을 하도 먹어서 질린 것이니 발은 절로 ***마트로 향했고 내 손은 절로 컵라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계산을 하고 물을 붓는데 갑자기 나오는 검은 빛깔의 물. 실수로 온수 대신에 커피 정수기의 커피를 약간 부은 것이었다. 잘못한 것을 바로 알아차려서 나머지는 온수를 적절히 채웠다. 맛이 약간 역하지 않을까 했으나 약간의 커피향이 묻어나올 뿐 라면은 목구멍을 아주 잘 넘어갔다. 라면을 다 먹은 뒤엔 후식으로 보충 삼아 양갱하나를 집어 삼켰다.

마트에서 출발한 뒤에 찍은 사진- 바퀴가 내려 앉은 느낌 때문에 또 바퀴에 구멍이 난 게 아닌가 노심초사였다.


 비가 그쳐서 방수팩에 넣어두었던 물건들을 다시 채비하고 출발하려는데 왠지 모르게 뒷바퀴가 약간 가라앉아 있었다. 또, 바퀴에 펑크가 난 것이 아닌가하고 맘이 덜컹 내려앉았는데 펌프로 바람을 넣으니 이상하게도 큰 이상이 없어 보여서 그대로 출발했다. 비가 꽤 오랫동안 내려서 하늘이 맑게 갠 것 자체는 정말 좋았으나 반대로 생각하면 곧 지면이 달아오르면서 땡볕 아래에서 달려야 되는 것을 의미했으므로 마냥 상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춘천의 46번 국도는 그래도 자전거가 다닐만한 갓길이 계속 있었는데 춘천과 가평 사이에 있는 경강교를 넘어서면서부터는 갓길이 극도로 좁아지더니 결국 없어지게 되었다.

 비가 내린 뒤라서 맑은 하늘 아래 북한강은 물론 아름다웠으나 상대적으로 갓길없이 그 옆을 달리는 나는 차들의 무한 위협을 계속 느끼면서 달렸다. 남양주에 진입하기 전에 한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는데 반바지를 입고 있었음에도 전혀 타지 않은 종아리는 그가 오늘 출발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금방 내가 따라잡았다가도 아직 체력이 따라지지 않은 그 여행자는 금방 나를 앞지르더니 유유히 지나갔다. 남양주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도로가 나타났으니 신국도와 구국도로 나눠진다는 표지판이었다. 신국도는 자동차 전용도로라서 이륜차는 구국도로 빠지란 말이 나와 있었으니 내가 가지고 있던 지도를 보고선 어떻게 빠질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고 그 표지판이 너무 늦게 나오는 바람에 구국도로 빠지지 못하고 신국도를 타게 되었다.

가평의 청평을 지나면서-


 신국도가 얼마간은 내리막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다고 느꼈으나 그것은 단지 진입 부분에서만 그랬고 오르막이 매우 길게 이어졌다. 내가 가지고 있던 지도에는 터널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으나 경험상 이런 지형에서는 끝부분에 터널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역시 예상대로 터널이 나왔다.

 첫번째로 나온 터널이 모란 터널이었는데 그 터널에서 오른 쪽 끝으로 아주 천천히 타고 가는데 저 멀리에 앞서갔던 여행자가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사실 그 여행자는 구국도로 빠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처럼 타이밍을 못 잡고 신국도를 타게 되었거나 자동차 전용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는 찜찜함을 모르고 오게 된 것 같았다. 그 여행자는 여행 첫날이라서 호기로웠으나 터널의 그 공포를 바로 이겨내지 못하고 걸어가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옆으로 유유히 지나갔고 터널을 지나서 약간 내리막길이 나오더니 이내 오르막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런 방식으로 두번을 지나 마석, 호평 터널을 모두 지났다. 해는 가평으로 진입하면서부터 완전히 떴기때문에 도로가 다시 달아올라서 그 끔찍하지만 시원한 터널들을 지나는게 오히려 반갑게 느껴질 정도 열기가 내 목을 졸랐다.

인증 한 번 찍어주고- 아침에 비가 와서 버프와 토시를 안 했는데 결과적으로 얼굴과 팔이 홀라당 타버렸다.


남양주를 관통해서 가는데 나온 첫번째 터널인 모란 터널-


 오르내리막길을 땡볕에 지나면서 물을 완전히 다 마셔버렸고 다시 갈증에 몸부림을 치면서 달리다가 주요소가 나오면서 갈증을 충분히 해소한 뒤에 달릴 수 있었다. 거의 그 주요소를 기점으로 46번 국도에서 43번 국도를 갈아타고 이제 친척집이 있는 의정부까지 20km도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공복에도 밥심이 나는 것 같다. 43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다리 하나를 건너자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 터널인 전도치 터널에 도착했다. 여전히 터널을 지나는 것은 끔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지체하지 않고 과감하게 뚫고 지나간다. 그 뒤로 내가 가진 지도에는 나와있지 않은 청학터널이 나왔지만 지도에 나오지 않은만큼 아주 짧은 터널이었고 역시 또 생각할 필요없이 넘어간다.

마지막 터널인 전도치 터널 앞에서...는 페이크고- 이 뒤로 청학 터널이 나온다. 의정부 시내까지는 12km


드디어 의정부에 입성-


의정부 시내보다 달리기 좋은 의정부 시내까지 가는 길- 완전히 새로 깔린 도로라서 달리긴 정말 편했다.


 그 터널을 지나서 무난한 평지가 나오고 너무나 익숙한 곳인 의정부시로 넘어간다. 시간은 완전히 널널하고 도심에 가까워지면서 거의 평지가 많이 나타나서 거의 힘든 곳이 없는 길이었다. 게다가 최근에 이 주변 지역을 개발해서인지 도로가 거의 새로 넓게 깔린데다가 다니는 차는 상대적으로 훨씬 적어서 달리기엔 아주 최적의 조건이다. 그 넓은 도로를 호젓하게 달리다가 도로가 좁아지더니 어렸을 때 수년간 봐왔던 의정부 시내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자전거가 나가지 않는 느낌이 든다.

 무슨 일인가하고 봤더니 아까 뒷바퀴에 바람이 빠졌던게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구멍난 곳을 찾으려고 했으나 전혀 구멍난 곳을 찾을 수 없었고 고육지책으로 바퀴에 바람을 넣고 달리기를 계속 반복해서 의정부역까지 왔다. 도심에 들어온만큼 자전거포는 전혀 걱정할 필요없이 아주 많이 보여서 바로 자전거포에 들어 갔다. 튜브를 때울 수도 있었으나 자전거포에서 때우는 것보다 차라리 튜브를 교체하는 것이 차라리 낫단 것을 알고 있었기에 튜브를 교체했다. 튜브를 교체하면서 가지고 있던 찜찜한 느낌까지 완전히 날려버리고 무리없이 이모댁에 찾아갈 수 있었다. 고3인 친척 동생이 있어서 거실에서 시끄럽게 할 수는 없었지만 어찌되었든 노숙을 하거나 찜질방, 모텔에서 있는 것보다는 훨씬 편했기에 방에 들어가서 뒹굴면서 티비를 보다가 편하게 침대에 잠들었다.

이모댁에서 찍은 사진. 아파트 꼭대기 층이라서 꽤 멀리까지 내려다 보인다.



주행시간 5시간 36분
평균속력 16.42 km/h
최대속력 55.43 km/h
평균RPM 74

하루/누적주행거리 94.76 km/1970.05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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